야생화 이야기

배롱나무 / Crape Myrtle

담바우1990 2022. 7. 22. 04:30

배롱나무  /  Crape Myrtle

 

동의어 : 백일홍나무, 자미목, 해당수, 양양수, 백양수, 간지럼나무, 파양수(怕癢樹)

분류 : 현화식물문 > 목련강 > 도금양목 > 부처꽃과 > 배롱나무속

학명 : Lagerstroemia indica L.

국내분포 : 중부 이남

해외분포 : 중국(원산지), 일본

서식지 : 양지바른 곳

크기 : 5m

꽃말 : 수다스러움, 웅변, , 행복

 

중국 원산의 관상용으로 심어 기르는 작은키나무이다. 줄기는 곧추서며 가지가 갈라지고 높이 3-7m이며 밋밋하다. 줄기 껍질은 붉은 갈색이고 벗겨진 곳은 흰색이다. 잎은 마주나거나 가지 끝에서는 어긋나며 타원형 또는 도란형이다. 꽃은 7-9월에 가지 끝에서 난 원추꽃차례에 붉은색, 보라색, 흰색으로 오랫동안 핀다. 꽃잎은 6장이고 끝이 주름진다. 열매는 삭과이며 둥글고 익으면 6갈래로 갈라진다. 씨에 날개가 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식재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부처꽃과(Lythraceae) 식물들에 비해서 풀이 아니라 나무이며, 수술은 30-40개로서 많고, 씨는 날개가 있으므로 구분된다.

 

배롱나무는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날에 꽃을 피운다. 산천초목이 모두 초록 세상이라 배롱나무 꽃은 한층 더 돋보인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고향이며, 고려 말 선비들의 문집인 보한집이나 파한집에 꽃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는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시집 오기 전의 중국 이름은 당나라 장안의 자미성에서 많이 심었기 때문에 자미화(紫微花)’라고 했다. 글자로는 보라색 꽃이지만 붉은 꽃도 흔하고 흰 꽃도 가끔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자미화는 보라 꽃이 아닌 붉은 꽃이 먼저 들어오지 않았나 싶다. 이유는 자미화가 들어오고 나서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쓴 것으로 짐작되는 양화소록(養花小錄)사람들이 이름을 제대로 익히지 않아 자미화를 백일홍이라고 한다라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저자인 강희안도 붉은 꽃을 보았음을 알 수 있어서다. 꽃이 오래 핀다고 하여 백일홍나무라 하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배기롱나무로 변했다가 지금의 배롱나무가 된 것이다.

 

배롱나무는 꽃 하나하나가 이어 달리기로 피기 때문에 100일 동안 피는 꽃으로 착각했을 뿐이다. 가지 끝마다 원뿔모양의 꽃대를 뻗고 굵은 콩알만 한 꽃봉오리가 매달려 꽃을 피울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아래서부터 꽃봉오리가 벌어지면서 꽃이 피어 올라간다. 대부분의 꽃들은 꽃대마다 거의 동시에 피는 경향이 있으나 배롱나무 꽃은 아래서부터 위까지 꽃이 피는데 몇 달이 걸린다. 꽃잎은 6~7장이고 모두 오글쪼글 주름이 잡혀 있다.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도 주름을 펴주지는 못한다. 주름 꽃잎은 배롱나무만의 특허품이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래 피는 특징 말고도 껍질의 유별남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오래된 줄기의 표면은 연한 붉은 기가 들어간 갈색이고,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얼룩무늬가 생겨 반질반질해 보인다. 이런 나무껍질의 모습을 보고 파양수(怕瀁樹)’,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간지럼을 태우면 실제로 잎이 흔들려서 간지럼을 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일 따름이다. 식물에는 작은 자극을 일일이 전달해 줄 만한 발달된 신경세포가 아예 없다. 일본 사람들은 나무타기의 명수인 원숭이도 떨어질 만큼 미끄럽다고 하여 원숭이 미끄럼 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배롱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남해안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는 해룡(海龍)이 파도를 일으켜 배를 뒤집어 버리는 심술을 막기 위해 매년 처녀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해마다 마을에서 가장 예쁘고 얌전한 처녀를 선발하여 곱게 화장을 시켜 바닷가 바위로 보내 해룡이 데려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마침 왕자님이 마을에 나타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처녀 대신 바위에 앉아 있다가 용을 퇴치한다.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얼마 동안 머물던 왕자는 처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사랑에는 마가 끼는 법, 왕자는 마침 출몰한 왜구를 퇴치하기 위하여 100일 뒤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마을을 떠나버린다.

 

매일 먼 바다를 바라보며 왕자를 기다리던 처녀는 그만 깊은 병이 들어 100일을 다 기다리지 못하고 죽고 만다. 약속한 날짜에 돌아온 왕자는 그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서울로 되돌아갔다. 이듬해 무덤 위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더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치 왕자를 기다리듯 매일 조금씩 피는 꽃이 100일을 넘겨 이어지므로,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백일홍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오늘날도 배롱나무 옛터의 명성을 잃지 않는 곳이 여럿 있다. 소쇄원, 식영정 등 조선 문인들의 정자가 밀집해 있는 광주천의 옛 이름은 배롱나무 개울이라는 뜻의 자미탄(紫薇灘)이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담양 후산리 명옥헌에는 키 4~10여 미터, 줄기 둘레 30~150센티미터의 고목 100여 그루가 모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롱나무 숲을 만들고 있다. 그 외에도 강진 백련사, 고창 선운사, 경주 서출지 등도 배롱나무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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