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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21 설난영 “난 집안 내 야당”... 김문수 감싸기보다 조언

담바우1990 2025. 5. 21. 06:55

250521 (수) 설난영 “난 집안 내 야당”... 김문수 감싸기보다 조언

 
 
 “정치는 진흙탕이다. 더러운 정치에 들어가면 당신도 똑같이 물들 것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씨는 김 후보가 1994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민주자유당 입당을 제의 받았을 때 이같이 말하며 반대했다.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정치판에 운동권 출신인 김 후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김 후보는 며칠 뒤 설 씨에게 다시 얘기를 꺼내면서 “우리 정치도 깨끗하고 선진화된 정치로 거듭나야 되지 않겠느냐”며 설득했고, 설 씨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설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람의 본성이 변하지 않으면 모범적인 정치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탁하고 더러운 정치판을 깨끗하게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설 씨의 동생 설선영 씨는 “언니는 고집이 굉장히 세고 자기 주장대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김 후보와 결정적인 순간에 의견이 엇갈리면 김 후보를 막진 않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 민자당 입당에 “정치는 진흙탕” 반대

설 씨는 1953년 전남 고흥에서 칠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순천여고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서울로 올라와 재수, 삼수까지 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 다시 입시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고 경험을 쌓고자 세진전자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설 씨는 리더십 등을 인정받고 25세에 노동자 1500명의 대표인 노조위원장을 맡게 됐다. 설 씨는 다음 해인 1979년 한국노총 금속노조 남서울지부 모임에서 김 후보를 처음 만났다. 설 씨는 여성부장,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이던 김 후보는 청년부장을 맡았던 것. 설 씨는 김 후보의 첫인상에 대해 “얼굴이 굉장히 맑고 똑똑해 보였다”고 기억한다.
 
 

 

김 후보는 1979년 12월 설 씨를 카페로 데려간 뒤 “시집갈 데 없으면 나에게 와라” 하고 청혼했다. 이에 설 씨는 “결혼 생각이 없다. 노조 일을 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당시 회사는 결혼한 여공을 해고하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설 씨의 설명이었다. 설 씨의 생각이 변한 건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탄압받으면서다. 두 사람은 진보적인 성향으로 찍혀 회사에서 해고됐다. 김 후보는 삼청교육대에 잡혀가는 것을 피하고자 도피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설 씨를 찾아 집에 숨겨 달라고 부탁했다. 설 씨는 그때 ‘이게 인연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김 후보는 “나는 가시밭길을 갈 건데 당신이 독립심과 분별력이 있고 정의로워서 배우자로 적합한 것 같다”고 재차 청혼했다고 한다. 김 후보는 설 씨 아버지와 만난 자리에서 “자네, 우리 딸을 어떻게 책임지겠나”라는 질문을 받고 “저는 만인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며 “제 아내 될 사람 하나 못 먹여살리겠습니까”라고 답변했다.
 
두 사람은 1981년 9월 26일 결혼했다. 김 후보는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결승 토론회에서 ‘별의 순간’을 묻는 질문에 “어려움 속에서 아내를 만난 것보다 더 큰 별의 순간은 없다”고 했다. 설 씨는 “저 같은 사람에게 장가 잘 온 거 아닌가”라며 “저를 만나서 하는 일에 많이 힘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김 후보 부부는 서울대 앞에 대학서점을 열고 재야 운동권 생활을 이어갔다. 또 설 씨는 한국여성노동자회를 만들어 여성 노동자를 현장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고, 탁아소 사업도 벌였다.
 
설 씨는 김 후보가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활동으로 수배당해 또다시 도피 생활을 할 때도 혼자 책방을 꾸리며 가정을 지켰다. 당시 구로공단 대우어패럴 노동자로 일하며 김 후보 집을 자주 찾은 김준용 국민노조 사무총장은 “우리를 동생처럼 보살펴주고 밥 해주고 책을 준 형수”라며 “형수님이 반찬을 절대 세 가지 이상 놓지 않을 정도로 검소했고 조용조용해서 운동권이라는 티가 안 났다”고 했다.
 

● 김문수, ‘광장 정치’ 시절 “진로가 염려됐다”

설 씨는 김 후보가 민자당에 입당해 경기 부천 소사 지역위원장을 맡자 14년간 운영해온 서점을 닫고 부천으로 이사했다. 김 후보가 의원에 당선된 뒤에는 “매일 홀몸노인, 불우한 아동 등 취약한 사람들이 있는 곳을 두 곳씩 찾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설 씨는 “약속을 다 지키진 못했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했다”며 “김 후보가 지역에서 지지 받는 데 작은 도움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설 씨는 김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취임한 뒤엔 도내 취약계층 관련 법인 시설을 방문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설 씨는 시설에 방문해 자체 점수를 매긴 뒤 “여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좀 들여다봐야겠다”고 김 후보에게 전했고, 이는 후속 조치로도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설 씨와 함께 활동한 윤숙자 전 한국여성지도자연합 경기도지부장은 “잠시도 가만히 안 계셨다. 하도 열심히 돌아다니니까 따라다니는 것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설 씨는 김 후보가 2014년 3선 경기도지사 불출마 선언을 한 뒤 2016년 총선 대구 수성갑 패배, 2018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를 겪고 이후 이른바 ‘태극기 집회’를 다니며 광장 정치를 하던 시절에 대해 “힘든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설 씨는 “당시 김 후보에게 정치적 목표가 없어 앞으로 진로가 어떻게 진행될지 염려됐다”고 했다.

 

이후 김 후보가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을 연달아 맡으며 가계 사정도 좋아지고 딸과 손주 등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윤 전 지부장은 “당시 사모님을 만났을 때 ‘남편이 월급을 갖다줘서 참 좋다’고 하더라”며 “내색은 안 했지만 어려움이 있었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설 씨는 김 후보의 이번 대선 출마에 반대했다고 한다.

 

김 후보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사과 요구를 거부한 뒤 대선 후보로 주목받은 데 대해 “일시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러다가 두어 달 동안 김 후보에 대한 지지가 계속되니 “이 시대가 소망하는 인물이 김 후보인가”라고 생각하며 출마에 동의했다고 한다. 설 씨는 “김 후보도 처음엔 주저했는데 조심스럽게 (출마 필요성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 설 씨 “집안 내 야당 역할 맡아 많이 지적”

설 씨는 “김 후보는 의견을 논의해야 하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저와 가능한 한 많이 대화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설 씨는 “‘집안 내 야당’ 역할을 맡아 많이 지적하고 평가하는 편”이라며 “남편을 감싸고 두둔하고 옹호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대구행 등 중요한 결정은 먼저 하고 나의 의견을 듣는다”고 덧붙였다.

 

비공개 행보를 이어가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와 달리 설 씨는 최근 방송 인터뷰와 유튜브 출연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후보 캠프에도 배우자실 등 별도의 조직을 두고 있지 않다. 요청받는 일정을 취합해 정리하는 실무진과 최소한의 수행 인원으로 꾸린 실무지원팀이 전부라는 것이다.  설 씨는 채널A 인터뷰에서 “제 의중이고 김 후보도 똑같다”며 “최소한의 인원만 같이 다니면서 정말 조용히 유권자들한테 지지를 호소하는 게 오히려 모습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당선 시 대통령실에 제2부속실을 두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한다고도 했다. 설 씨는 지난달 4월 30일 국민의힘 경북 포항북 당원협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혜경 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혐의를 겨냥해 “법카로 밥을 사먹지 않는다, 저도. 제사상을 법카로 마련하질 않아요”라며 김혜경 씨를 향한 네거티브 발언도 이어가고 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