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이야기

주목(朱木)/ Japanese Yew

담바우1990 2021. 10. 17. 10:19

주목(朱木)/ Japanese Yew

 

 

분류 : 겉씨식물 > 구과식물강 > 구과목 > 주목과 > 주목속
원산지 : 아시아(중국,대한민국,일본), 유럽(러시아)
서식지 : 고산 지대
크기 : 약 16m ~ 22m
학명 : Taxus cuspidata Siebold & Zucc.
꽃말 : 고상함, 비애, 죽음

 

국토의 척추인 백두대간을 타고 점봉산,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바다 건너 한라산까지 태산준령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런 명산의 꼭대기에는 어디에서나 은근하게 우리를 맞아주는 나무가 있다. 바로 늙은 주목들이다. 비틀어지고 꺾어지고 때로는 속이 모두 썩어버려 텅텅 비워버린 몸체가 처연하다. 그런 부실한 몸으로 매서운 한겨울의 눈보라에도 여름날의 강한 자외선에도 의연히 버틴다. 굵기가 한 뼘 남짓하면 나이는 수백 년, 한 아름에 이르면 지나온 세월은 벌써 천 년이 넘는다.

 

강원도 정선 사북읍을 못 미처 철쭉꽃으로 유명한 두위봉이란 곳이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목 세 그루가 천연기념물 4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운데 맏형의 나이는 자그마치 1천 4백년이나 되었으며, 지름은 세 아름에 이른다. 김유신 장군과 계백 장군이 그의 동갑내기다. 삼국통일의 소망을 달성한 승자나 백제의 최후를 몸으로 저항했던 패자나 모두 영욕의 세월을 뒤로한 채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주목 세 그루는 지금도 두위봉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100년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오래 산 주목은 모두가 높은 산에서 만날 때처럼 육신이 병들고 허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몸 관리를 잘한 주목의 육체는 빈속 없이 꽉꽉 채워져 있다. 이름대로 껍질도 속도 붉은색이 자르르함은 물론이다. 옛사람들에게 붉은 주목은 잡귀신을 물리치는 데 쓰이는 벽사(辟邪) 나무였다. 아울러 몸체 일부에서 ‘탁솔(Taxol)’이라는 항암물질을 만들어내는 만큼 나무를 썩게 하는 미생물들도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금상첨화로 나무의 질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천천히 세포 속을 다지고 필요할 때는 향기도 조금씩 넣어 가면서 정성스레 ‘명품’을 만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주목의 속살이 명품임을 먼저 알아준 이는 바로 절대 권력자들이었다. 살아생전에 누리던 기득권을 저승길에서도 언감생심 주목과 함께 가져가고 싶어 했다. 우선은 자신의 주검을 감싸줄 목관(木棺)으로 주목을 따를 나무가 없다. 중국의 지리지인 《성경통지(盛京通志)》1) 란 옛 책에 보면 “주목은 향기가 있고 목관으로서 가치가 높아 아주 귀하게 쓰인다”라고 했다. 서양에서도 주목을 관재로 쓴 예가 여럿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양 낙랑고분, 경주 금관총, 고구려 무덤인 길림성 환문총의 나무 관(棺) 등에 모두 주목이 쓰였다.

 

귀하신 몸과 함께 땅속에는 같이 들어갔지만, 주인의 간절한 바람과는 아랑곳없이 2천 년 된 낙랑고분에서처럼 주목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고, 권력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부질없는 욕심은 이렇게 허망하다. 그 외에 우리 주목과 모양이 조금 다른 중국 주목(학명 Taxus chinensis)은 톱밥을 물에 우린 다음 궁중에서 쓰는 붉은색 물감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고급 활을 만드는 재료에서부터 임금을 알현할 때 손에 드는 홀(笏)에 이르기까지 주목은 육신을 나누어 주어야 할 곳이 너무 많았다. 흔히 주목의 특징을 얘기할 때 하는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주목이 속한 집안은 대부분 솔방울을 달고 있는 구과(毬果)식물인데, 이웃들과는 달리 특별한 모양의 열매를 만들어냈다. 고운 분홍빛의 갸름한 열매는 작은 컵처럼 생겼고, 가운데에 흑갈색의 씨앗을 담아두는 식의 독특한 설계를 했다. 분홍빛의 말랑말랑한 육질은 ‘탐내는 누구나 따 잡숫고 멀리 가서 볼일을 봐 달라’는 희망이 담긴 것이다. 딱딱한 씨앗 속에는 독성이 강한 성분을 넣어두었다. 씹어 먹지 말고 그대로 삼켜 달라는 사전경고다.

 

주목은 아스라이 먼 3억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자리를 잡아오다가, 한반도에서 새 둥지를 마련한 세월만도 2백만 년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몇 번에 걸친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자자손손 삶을 이어왔다. 어릴 때부터 많은 햇빛을 받아들여 더 높이, 더 빨리 자라겠다고 발버둥치지 않는다. 아주 천천히 숲속의 그늘에서 적어도 몇 세기를 내다보는 여유가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성급한 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어느새 수명을 다할 것이니 그날이 오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하루 종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주목이 주는 메시지는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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