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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잔칫상 단골음식..... 홍어의 모든 것

담바우1990 2017. 9. 29. 03:13

전라도 잔칫상 단골음식..... 홍어의 모든 것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 출처 : 조선일보 / 주말매거진


선사시대 유적에서 뼈가 발굴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먹었던 한반도의 음식… 특히 전라도에서 사랑받았던 잔치 음식, 홍어. 홍어는 이른 봄 이맘때 나오는 걸 최고로 친다. 전라도에서는 어떤 홍어가 나왔느냐를 두고 손님들이 '이 집은 손님 대접을 하네, 못하네' 수근거린다고 한다. 전라도 잔칫상 단골손님으로 무게가 8㎏ 넘고 이른 봄에 나오는 홍어를 최고의 상품으로 친다. 무침·불고기·날개찜·만두·회·애탕… 뭘 먼저 먹을까? ①코 ②날개 ③꼬리 ④살… 애호가들이 매긴 부위 서열이다.


홍어를 자르는 김성심(61)씨의 칼은 빠르고 거침없었다. 목포에서 아침에 잡아 올렸다는 홍어는 거대했다. 서울 역삼동 '해남천일관' 이화영 대표는 "한 12㎏ 나가려나?" 했다. 홍어는 8㎏ 이상을 최고로 친다. 암컷 홍어만이 이만한 크기로 나온다. 수컷은 5㎏ 이상이 드물다. 8㎏을 '1번지' 7㎏을 '2번지', 그 밑으로 ㎏당 순위가 떨어진다. 맛과 가격도 달라진다. 12㎏이면 '0번지', 그야말로 순위를 매길 수 없는 특상품이다.



​▲ 홍어 : ①코  ②애  ③볼  ④몸통  ⑤날개  ⑥꼬리


◇ 홍어애는 아기 다루듯 조심조심
떨리기도 하련만, 김씨는 "20년간 천일관 주방에서 일하면서 이만한 홍어를 매주 한두 마리씩은 자른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홍어는 선사시대 유적에서 뼈가 발굴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먹었다. 특히 전라도에서 사랑받았다. 고향이 광주인 음식칼럼니스트 주영욱씨는 "전라도에서는 잔칫상에서 홍어가 빠지지 않는다"며 "어떤 홍어가 나왔느냐를 두고 손님들이 '이 집은 손님 대접을 하네, 못하네' 수근거린다"고 했다. "20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바로 다음 날 어머니가 장례식장에서 쓸 홍어 구하러 나가셨죠. 그만큼 홍어에 신경 쓰셨죠."




​▲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말했다


홍어삼합은 이 말의 뜻을 맛으로 보여준다. 삭힌 홍어와 묵은지, 삶은 돼지고기를 함께 먹으면 각각 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미각의 시너지를 경험한다. 홍어는 연중 내내 나오지만 이른 봄 이맘때 나오는 걸 최고로 친다. "5월이 다가오면 산란기 암컷은 새끼 낳느라 비쩍 마르고 맛이 떨어집니다." 홍어는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다. 암놈은 겉에서 볼 때는 산문(産門)이 하나지만 몸속으로 들어가면 세 갈래로 갈라진다. 가운데 것은 창자로 연결되고, 양쪽 것은 애기집이다. 애기집에는 알이 붙어 있다. 이 알이 없어지면서 태가 형성되고 새끼가 만들어진다. 홍어는 크게 코·날개·몸통·꼬리·애(내장)로 해체된다. 김성심씨는 가장 먼저 꼬리를 잘라냈다. 홍어 전문점들은 보통 꼬리를 다져서 내지만, 해남천일관에서는 가시가 있어 먹기 힘든 꼬리를 버린다.


​​▲고춧가루 살짝 뿌려 숯불에 구운 홍어불고기


해남천일관은 1924년 전남 해남에 문 연 유서 깊은 남도 한정식집 ‘천일식당’의 서울 지점. 이 대표는 천일식당 창업주 고(故) 박성순 여사의 외손녀다. 해남 유지였던 이 대표의 집안에서는 홍어 꼬리를 먹지 않았다고 했다. 꼬리에 이어 김씨는 홍어 코를 잘랐다. 마니아들이 코를 최고로 꼽는 건 톡 쏘는 맛이 가장 강렬하기 때문이다. “코는 죽는 순간부터 제일 먼저 삭아요.” 거침없던 김씨의 칼 놀림이 신중해졌다. 칼끝으로 홍어의 아랫배 쪽 불룩한 부분의 껍질을 둥그렇게 도려냈다. 껍질을 살살 벗기자 연분홍빛 애가 모습을 드러냈다. “애가 터지면 쓸 수가 없어요.” 김씨가 아기 다루듯 조심조심 애를 두 손으로 꺼냈다. 대접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컸다. 홍어 대가리 양옆에서는 동그란 살덩어리 두 점을 떼어냈다. “볼살이에요. 전라도에서는 ‘볼딱살’ ‘뽈때기살’이라고도 부르죠.” 코와 애, 볼살 이렇게 세 부위를 홍어 특수 부위라 부른다. 몸통 살과 날개는 상에 내기 직전 자른다. 김씨가 껍질에 묻은 물을 깨끗한 거즈로 닦아낸 다음, 두툼하고 누르스름한 종이로 쌌다. “쌀포대 안쪽 종이예요. 이게 홍어 삭히는 데는 최고더라고요. 수분을 적당히 빨아들여 너무 축축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건조하지도 않게 보관할 수 있어요.”


◇ 홍어회 삭혀 먹지 않는다?

▲ 막걸리 식초에 씻어 매콤새콤달콤하게 버무린 홍어회무침


홍어 해체에 이어 시식 차례였다. 특수 부위 3종이 맨 처음 나왔다. 애부터 맛봤다. 달고 고소하고 부드럽고 촉촉했다. 볼살은 빛깔이 흰 데다 몸통 쪽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식감이 독특하기로는 코가 최고였다. 우선 노을 진 듯 붉은색이 시각적으로 강렬했다. 전혀 삭히지 않았지만 삭힌 홍어회 특유의 암모니아 향이 벌써 올라왔다. 해남천일관에서는 홍어회를 삭히지 않고 내기도 한다. 이 대표는 “원래 우리 집에서는 홍어를 삭혀 먹지 않았다”고 했다. 싱싱한 홍어를 구할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는 홍어를 삭히지 않았다. 홍어의 본고장이랄 수 있는 흑산도에서도 얼마 전까지 삭힌 홍어를 먹지 않았다. 삭힌 홍어가 나오게 된 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다. 고려 말 섬주민들은 왜구에 시달렸다. 정부는 공도(空島) 정책을 실시한다. 주민들을 뭍으로 이주시키고 섬을 비우는 정책이었다. 흑산도 사람들은 배를 타고 목포를 거쳐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에 정착해 살다가 왜구가 잠잠해지면 흑산도로 돌아가곤 했다.



​▲ 달걀옷 입혀 노릇하게 지진 홍어전


흑산도에서 나주에 닿으려면 보름이 걸렸다. 냉동·냉장기술이 없던 시절, 다른 고기는 썩었다. 홍어는 발효됐다. 삭힌 홍어는 이렇게 탄생했고, 나주와 인근 지역에서 별미로 즐기게 됐다. 천일관에서는 본래 생 홍어를 냈지만, 삭힌 홍어를 찾는 손님이 늘자 둘 다 요구대로 내주고 있다. 생 홍어회와 2달 숙성한 홍어회를 나란히 시식했다. 생 홍어회에서는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생선 비린내 또는 잡내 따위가 전혀 없었다. 씹는 맛이 기막혔다. 부드러우면서도 차졌다. 콩고물에 버무리지 않은 인절미 같달까. 호남 부자들이 왜 생 홍어를 선호했는지 알 만했다. 삭힌 홍어회를 입에 넣자 그제야 ‘아 홍어회 먹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어회라고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냄새가 코로 올라왔다. 홍어를 처음 먹는다는 20대 여성은 “생선회에 아세톤(매니큐어 제거 용액)을 발라 먹는 맛”이라며 얼굴을 찌뿌렸다.


▲만두피를 깨물면 홍어 특유의 풍미가 터져나오는 홍어만두


◇ 진하면서도 개운한 홍어애보릿국
홍어 회무침과 날개찜, 만두, 불고기, 애국, 전을 맛보았다. 회무침과 날개찜은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만두와 불고기는 해남천일관만의 독창적 메뉴. 홍어만두는 자투리살과 머리뼈 등을 곱게 다져서 잘게 다진 파·양파·김치 등과 섞어 만든 소를 만든다. 얇은 만두피를 깨물면 홍어 특유의 냄새가 입안에서 폭발했다. 시식한 홍어 음식 중 가장 인상이 강렬하면서 동시에 섬세하고 세련된 맛이었다. 홍어불고기는 얇게 썬 홍어살에 고춧가루만 살짝 뿌려서 숯불에 구웠다. 홍어 시식의 대미는 홍어애보릿국으로 장식했다. 보릿국은 남도 향토음식이자 봄에 먹는 절식. 겨울이 지나고 푸릇푸릇 보리싹이 올라오면 이걸로 국을 끓인다. 보리싹이 한 뼘 자랐을 때까지 먹는다.



​​▲​담백하면서 홍어 고유의 맛이 살아있는 날개찜


보릿국에 홍어 간을 넣은 홍어애보릿국은 ‘홍어애탕’이라 불리기도 한다. 해남천일관에서는 된장과 물에 씻은 묵은지를 넣은 국물에 싱싱한 홍어 간과 나머지 내장을 함께 넣는다. 한소끔 끓으면 보리싹을 넣고 다진 마늘, 고춧가루, 소금으로 간한다. 국물을 한 숟갈 들이켜자 코가 뻥 뚫리는 듯한 청량감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보리싹은 사각사각 산뜻한 식감과 풋풋한 향을 더한다. 이질적인 두 가지 재료가 만나 환상의 조화를 빚어낸다. 시원하고 개운하다. 텁텁하거나 탁하지 않으면서 깊이 있는 구수한 맛이다. 진하면서도 개운한 남도의 봄맛이 식도를 타고 온몸으로 흘렀다.


<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홍어 주요 부위 >


1. 코 - 홍어마니아들은 '일 코, 이 날개, 삼 꼬리, 사 살'이라고 홍어 부위 서열을 매긴다. 코를 가장 맛있다고 꼽는 이유는 삭힌 홍어 특유의 톡 쏘는 향과 맛이 가장 강렬하기 때문. 잘라낸 단면이 투명하면서 바깥쪽으로 갈수록 진한 붉은색을 띤다. 젤리처럼 말랑말랑하면서도 쫄깃쫄깃 탱탱하다.
2. 애 - 홍어의 간이다. 간을 비롯, 내장 전체를 아우른다. 달고 고소하기가 서양 3대 진미 중 하나로 꼽히는 푸아그라(거위·오리 간) 못잖다는 미식가도 있다. 씹을 틈도 없이 혀에서 녹아내린다. 보리싹과 함께 넣고 끓이는 홍어애탕(홍어애보릿국)이 특히 별미. 끄트머리에 붙은 검은 쓸개는 써서 먹지 못하므로 잘라 버린다.
3. 볼살 - 홍어 머리 양옆에 붙은 작고 동그란 살덩어리. 조금 나오는 귀한 부위다. 흰색에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홍어와 대구살을 합쳐놓은 듯하다. 남은 대가리는 홍어애탕 등 다른 요리할 때 넣는다.
4. 몸통 - 주로 삭혀서 회로 먹는다. 삭힌 홍어는 강렬한 암모니아 향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냄새 나는 음식'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린다. 과거 호남에서는 항아리에 담긴 두엄 더미 위에 지푸라기를 깔고 삭혔다고 하나, 요즘은 냉장고에서 장시간 저온 숙성한다. 온도 변화 없이 천천히 오래 삭혀야 쫀쫀한 식감이 산다. 과거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배에 싣고 나주까지 올라갔는데, 이 과정에서 홍어 먹는 습관이 달라졌다 한다. 흑산도는 생 홍어, 목포는 반쯤 삭은 홍어, 나주는 심하게 삭은 홍어를 즐긴다는 것. 나주에서는 초장에, 함평과 영암에서는 소금을 찍는 등 지역마다 먹는 법도 조금씩 다르다.
5. 날개 - 찜으로 주로 먹는다. 회로 먹기도 한다. 오독오독 씹히는 연골이 별미다.
6. 꼬리 - 대부분 홍어집에서는 '3순위'인 꼬리를 잘게 다져 낸다. 해남천일관에서는 잘라서 버린다. 이화영 대표는 "가시가 있어서 먹지 않는다"고 했다. 전라도 부잣집에서는 원래 꼬리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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