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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6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 36.9%… 판세는 더 ‘깜깜이’

담바우1990 2022. 3. 6. 04:57

220306 (일)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 36.9% 판세는 더 깜깜이

 

 

20대 대선 사전투표가 뜨거운 관심 아래 36.9% 투표율로 막을 내렸다. 과거 선거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사전투표율은 어느 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할까. 초박빙 접전 구도 속에서 높은 투표율을 두고 여야의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유권자 44197692명 중 16323602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지난 19대 대선 사전투표율(26.1%)보다 10.8%포인트 높은 수치이며, 가장 최근 전국 단위 선거인 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26.7%)보다 10.2%포인트 높다.

 

 높은 비호감도, 막판 단일화가 與野 진영 결집 부른 듯

지역별로는 전남이 51.4%로 제일 높았고, 전북(48.6%)과 광주(48.3%), 세종(44.1%) 40%선을 돌파하며 뒤를 이었다. 경기가 33.7%로 가장 낮았고, 제주(33.8%), 대구(33.9%) 순으로 낮았다. 서울은 37.2%로 전국 평균보다 약간 높았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따라붙었는데도 이번 대선은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을 기록하게 됐다. 39일 본 투표에서도 이 같은 기세가 이어진다면, 1997 15대 대선 이후 25년 만에 투표율 80%’ 고지에 올라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역대 가장 많은 유권자들이 사전투표소로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막판까지 초박빙 접전을 벌이고 있는 데다, 사전투표 직전 성사된 야권 단일화가 각 진영의 지지층 결집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선거가 종반부에 접어들었는데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접전 양상이 각 진영 유권자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투표소로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또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한 유권자들이 밀집도가 높아지는 상황을 피해 본투표 대신 사전투표를 택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사전투표율, 호남 높고 영남 낮지만판세는 깜깜이

통상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진보 진영에 유리할 것으로 예측돼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전통 텃밭인 호남에서 사전투표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터라, 민주당 진영에선 내심 고무된 분위기가 읽힌다. 다만 이번 대선의 경우 사전투표율만으로 특정 진영의 득실을 따지긴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분석이다.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유지보다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사전투표율만으로 민심을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본 투표에서 국민의힘 전통 텃밭인 영남권의 투표율이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낮은 사전투표율을 상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관건은 사전 투표에 어느 세대가 더 많이 참여했는지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각종 여론조사에서 통상 윤석열 후보는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이재명 후보는 40~50대에서 높은 지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단 선관위는 사전투표율의 연령별 투표율을 공개하지 않아, 실제 효과를 예측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한편 20대 대선 본 투표는 3 9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실시된다. 사전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들은 주민등록지 내 지정된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격리 유권자는 9일 오후 6시부터 오후 7 30분까지 투표하면 된다. 선거 결과의 경우 지상파 3사 출구 조사에 따른 예측 결과가 투표 종료 이후 즉시 발표될 예정이지만, 초박빙 승부가 전망되는 터라 정확한 결과는 개표가 마무리되는 3 10일 새벽 또는 오전에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윤석열 나홀로 사전투표김혜경 · 김건희는?

 

20대 대통령선거의 사전투표가 24일 시작되면서 양강 후보들은 저마다 다른 장소에서 한 표를 행사했지만, 배우자는 보이지 않았다. 유력 여야 대선 후보들이 배우자와 함께 투표소를 찾지 않은 것은 1987년 직선제 이후 처음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대선 막판까지 초박빙 접전 구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자칫 배우자 등판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양당의 공통된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날 오전 각각 서울 중구 소공동주민센터, 부산 남구 대연4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했다.

 

하지만 이른바 배우자 리스크로 공식 선거운동 기간 내내 수면 아래 있던 이재명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 씨와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는 둘 다 투표장에 동행하지 않았다. 대신 김혜경 씨는 따로 사전투표할 것으로 알려졌고, 김건희 씨는 이날 오전 자택 인근인 서울 서초구 서초1동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마쳤다. 김건희 씨는 투표 후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고생 많으십니다라고만 짧게 답했다. 이어 공식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차에 타고 자리를 떠났다. 민주당은 자칫 언론의 관심이 김혜경 씨에 집중되면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후보의 메시지가 흐려질 것을 우려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아직 공개된 자리에 나오는 것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비공개로 사전투표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 2014년 이재명 후보의 성남시장 선거와 2018년 경기지사 선거 때는 모두 이재명 후보와 함께 사전 투표했다. 김씨는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이재명 후보의 빈틈을 메우며 전국 팔도를 누볐다. 그러다 공무원 사적 심부름 이용 의혹과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 등으로 공개활동을 중단했다. 김건희 씨 역시 지난해 허위 경력 기재 논란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사과 기자회견을 한 후 공개석상에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현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도 여전히 제기되는 상황에서 부정적 이미지가 남편 윤 후보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당도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선대본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남은 선거기간 동안 김건희 씨의 공개 활동 여부에 대해선 아직은 특별한 계획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두 사람은 대선이 끝날 때까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양강 후보자의 배우자들은 논란과 의혹에 중심에 있다. 그러다 보니 동반 부정현상이 생긴다면서 김혜경 씨가 나타나면 김건희 씨도 잘못했잖아라고 하고, 김건희 씨가 나타나면 김혜경 씨도 잘못했잖아라고 하는 마치 도플갱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과하는 모습도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재명 후보, 윤석열 후보 모두 여성층 표심을 잡아야 하는데, 여성 유권자의 비호감을 사고 있는 배우자들이 나오면 되겠느냐라며 윤석열 후보의 경우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는데 와이프가 왜 굳이 나오느냐, 이재명 후보 입장에선 따라 잡고 있는데 부인이 왜 등장하느냐며 양측 지지층의 항의도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배우자들이 나올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가 양강 후보의 배우자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최초의 선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준석 , 8%p 이상 격차로 승리", 막바지 변수 없애줘"

 

대통령선거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할 수 없는 '깜깜이' 기간이 시작된 가운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8%포인트 격차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이길 것으로 내다봤다. 이준석 대표는 35일 오전 연합뉴스TV에 출연해 "저희가 블랙아웃에 들어가기 전, 여론조사 업체에 따라서 6~8%포인트 차이의 조사들이 이제 나오고 있다""그것보다는 좀 더 결과치가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호남에서 30% 지지율을 얻겠다는 목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준석 대표는 "호남에서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반응 이거는 저희도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게 이제 장년층으로 조금씩 전파되는 분위기"라며 "이재명 후보 같은 경우에는 민주당 후보라는 것 외에는 호남에서 딱히 뽑아줄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다"고 했다. 이어 "(호남 여론조사의 경우) ARS조사와 면접조사가 극명하게 (차이가) 드러난다""전화를 받았을 때 면접조사는 '저 윤석열이요' 말해야 하는데 ARS 조사는 1번 아니면 2번 중 눌러주세요, 그러면 주변 눈치를 안 보고 누를 수 있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는 "대부분 ARS조사에서 20%30% 사이의 수치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선거 막바지에 변수가 사라졌다는 게 굉장히 큰 역할을 하기는 했다"고 평가했다. 안철수 대표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인수위원회나 조각, 공동정부론 이런 것은 당연히 후보의 영역"이라면서도 "본인(안철수 대표)이 행정을 언급했기 때문에 조각했을 때 입각의 의미도 있을 수 있지만 또 지방 행정을 담당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후자일 경우 당이랑 좀 상의를 해야 되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와 안철수 후보가 선거 기간 주고 받은 설전에 대해서는 "안철수 대표가 이번 선거를 뛰는 과정 중에서 우리 후보에 대해서 별의별 얘기를 좀 다 했던 지점이 있다. 손가락을 자른다든지 뭐 이런 과격한 언사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저는 당 대표로서 그걸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대표가 지금 정권교체의 대오에 같이 하겠다는 취지로 이번에 사퇴하고 지지 선언을 했기 때문에 저는 안철수 대표를 굉장히 예우할 거다"고 했다.

 

 

 

 

 

 

 

민가와 도로까지 위협한 '화마' 울진 · 삼척 산불 확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3 5일 전국적으로 9건의 산불이 발생한 가운데 인명피해 우려가 있는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과 강릉·동해 산불은 야간 집중 관리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중대본에 따르면 울진·삼척 산불로 인해 이날 오후 10시까지 330개 시설이 소실됐다. 산불로 인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고, 산림 피해는 12012ha(울진·삼척 11711ha, 강릉·동해 286ha, 영월 15ha)로 추정했다.

 

산불은 지난 3 4일 오전 11 17분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야산에서 발생해 강한 바람을 타고 번져 삼척까지 확산했다. 현재 36시간 가까이 진화되지 않고 있다. 이와 별개로 이날 오전 18분께 강릉 옥계면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 강릉·동해 산불은 동해시 망상·묵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대본은 전국적으로 9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인명피해 우려가 있는 울진·삼척과 강릉·동해 등에 대해 야간 집중 관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울진·삼척 산불로 울진, 삼척, 강릉, 동해에서 3704세대 6231명이 대피했다.

 

임시 주거시설에는 울진군과 삼척시 699, 강릉시와 동해시 424명이 머물고 있다. 이날 산불 확산으로 도로와 철도도 통제됐다. 동해고속도로 옥계IC~동해IC 양방향이 오전 830분부터 전면 통제되고 있다. 42번 국도 백봉령~7번 국도 분기점은 오후 9시부터 마찬가지로 통제되고 있다. 7번 국도는 통제가 해제됐다. 영동선 동해~강릉 구간을 오가는 모든 열차도 이날 낮 12시를 기점으로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산불 진화에는 산림 당국과 소방, 경찰, , 지자체 등의 헬기 80, 지휘차 19, 진화차 112, 소방차 545대와 인력 11241명이 투입됐다. 소방청은 이날 오전 530분을 기해 전국 소방동원령 2호를 발령했다. 소방동원령 2호는 지난 2020 5월 강원 고성 산불 당시 발령된 바 있다. 소방동원령은 대형 화재나 사고, 재난 등 긴급상황 발생 시 부족한 소방력을 다른 지역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소방력 동원 규모에 따라 1(당번 소방력의 5%)·2(10%)·3(20%) 순으로 단계가 올라간다.

 

정부는 이번 산불의 확산 방지와 피해 조기 수습을 위해 전날 오후 9시를 기해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중대본을 가동했고, 같은 날 오후 10시를 기해 강원과 경북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관계 부처와 지자체가 산불 진화 상황과 대처 계획을 공유하고 다수의 산불 발생으로 인해 진화 자원의 동원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봤다. 전헤철 본부장은 회의 후 산불 현장 주변 한울원자력본부로 이동해 안전 관리 대책을 점검하고 울진군 북면 신화2리 일원 피해 현장을 방문해 지역 주민들의 애로 사항을 청취했다.

 

전해철 본부장은 인명과 중요시설 보호가 최우선이라며 임시주거시설 등에 대피한 주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필요한 지원이 적시에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쯤 울진·삼척 산불을 중심으로 한 피해 지역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가용자원을 총 동원해 산불 조기 진화에 전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밥의 원조는 한국일까, 일본일까이용재의 식사(食史)

 

집에서 일해 대부분의 끼니를 직접 해결하지만 바쁜 날이면 주저없이 김밥의 신세를 진다. 아파트 상가의 유일한 음식점인 분식집에서 한 줄에 2,000. 주문을 넣고는 언제나 몇 발짝 떨어져 김밥을 마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렇게 손으로 일일이 싸고 말아서 완성하는데 고작 2,000원이라니. 김밥값이 결국은 손값이라는 건데 이렇게 싸게 팔아도 되는 걸까?

 

몇년 전 김밥집을 밀착 취재한 적이 있다. 새벽 다섯 시에 찾아가 밥짓기부터 완성된 김밥이 나오는 과정을 관찰하며 충격을 받았다. 완성된 김밥을 써는 기계는 있었지만 마는 건 기술을 갖춘 여성 인력들이 한 줄씩 해결하고 있었다. 김밥이라는 음식의 정체성은 결국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는 것이구나. 세월이 흘러 2022, 유튜브를 검색하면 김밥 마는 기계를 볼 수 있다. 다만 밥을 펴고 김으로 싸주는 두 공정만 해결해 줄 뿐, 속재료는 사람이 직접 올려줘야만 하니 빠르기의 차원에서는 숙련된 인력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지, 김밥은 이런 음식이지. 며칠 전에도 언제나처럼 책상에 앉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김밥을 열심히 욱여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김밥은 대체 언제 어떻게 한국인 모두의 음식으로 자리 잡은 걸까? 김밥은 대체 어디에서 온 음식일까? 말하자면 기원이 궁금해져 인터넷을 뒤져보니 참으로 흥미로웠다. 김밥이 일본에서 또는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려 있었다.

 

평론가로서 음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믿는다. 역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이런 지면을 꾸려 나갈 수 있을까? 되려 음식을 말할 때 역사가 남용되고, 그 결과 가장 중요한 맛을 논하지 않는 경향이 한국 사회에 있기 때문에 현재를 중시 여긴다는 말이다. 기원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느라 당장 오늘 우리 입에 들어가는 김밥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없다면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담론을 제대로 형성 못하는 현실이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조금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음으로 김밥의 기원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소개한다.

 

김밥의 일본 기원설

김에 대한 기록은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상도지리지(1425)’동국여지승람(1530)’에 전라남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품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의 주식이 밥이므로 김을 밥에 싸먹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지만 조선 시대에 김밥을 먹었다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김은 일제강점기까지도 굉장히 귀한 식재료였으므로 김밥이 조선 시대에 보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뒤집어 말하면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김의 생산이 늘어나면서 김밥도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사회 전반에 보급된 도시락 문화도 김밥의 일본 기원설을 뒷받침한다. 조선 시대에는 관청에서 식사를 제공했던데 반해, 일제강점기에는 직원들이 점심을 식당에서 먹거나 도시락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학교 또한 아침에 등교해 점심 시간을 넘겨 수업을 받게 되면서 도시락이 필요해졌다. 마지막으로 창경원 벚꽃놀이 등의 야유회로 인해 도시락의 존재감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외식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파가 엄청나게 몰렸으므로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게 훨씬 더 편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193037일자 동아일보에서는 부인의 알아둘 봄철 요리법(2)’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야유회용 도시락 만드는 법을 소개했다. ‘창경원에 꽃구경을 가더라도 점심 때는 되고 식당을 들어가면 양은 적고 비싸서 여건 불경제가 아닙니다. 집에서 준비하여 가지고 가면 편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후략).’ 그리고 산도위치(샌드위치)와 함께 김쌈밥의 레시피가 실려 있었다.

 

쌈밥(스시)으로 김쌈밥(노리마기스시, 海苔巻きずし)이 있습니다. 재료는 아사구사노리라고 하는 두꺼운 일본김으로, 조선김으로 쓰려면 두 장을 씁니다. 밥이 뜸이 들만 하면 따로 그릇에 퍼고, 식초 한홉, 설탕 2숟갈, 소금 1숟갈, 아지노모토 1숟갈을 섞어 밥에다 비빕니다. 이것이 스시밥 짓는 것입니다. 표고를 물에 불려 간하고, 계란은 지단을 부치며, 덴부라고 하는 도미살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것을 준비합니다. 발 위에 김을 놓고 김 가운데 계란, 표고, 덴부를 놓고 말아갑니다. 만 것을 칼로 벱니다. 일본 빨간 장아찌를 잘게 썰어 같이 먹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의 기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당시의 김밥이 비교적 잘 사는 계층의 음식이었다는 점이다. 함께 소개한 샌드위치에 쓰이는 빵이나 버터, 잼도 그렇지만 아사구사노리라는 일본 김, 표고버섯 등도 고가의 재료였기 때문이다. 한편 두 번째로는 밥에 식초와 설탕 등으로 간을 했다는 점이다. 애초에 스시의 일종이라고 소개한 맥락에 충실한 조리법으로, 일관적으로 신문 등에 등장했다가 1977년에 이르러서야 변화를 겪게 된다. 1977312일자 매일경제의 봄놀이 채비 야외 도시락의 조리법에서 간하는 과정을 생략한 레시피를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밥에 일본식으로 간을 하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에 초등, 아니 국민학교를 다녔던 내 경험만 살펴 보아도 그렇다. 우리집은 간을 하지 않은 밥을 썼지만, 소풍을 가면 새콤달콤하게 간이 된 김밥을 심심치 않게 얻어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할머니 세대, 1910~1920년대생들이 싸준 김밥은 대체로 간이 되어 있는 편이었으니 싸가지고 온 급우들도 김밥이 아닌 김초밥이라 일컬었다.

 

요리책도 당시의 경향을 뒷받침해 준다. 1982년 출간된 삼성가정요리(삼성출판사)’의 제20권인 별미 밥과 별미 죽에는 굵은 김밥가는 김밥이 실려 있는데 이름 자체가 일본 음식인 후토마키와 호소마키를 직역한 것이다. 물론 밥을 식초와 설탕 등으로 간한다거나, 일본식 생선 보푸라기인 오보로, 표고 등을 쓰는 것까지 100% 일본식이다.

 

김밥의 한국 기원설

김밥이 한국 고유의 음식이라는 주장은 김의 역사를 근거로 삼는다. 이미 삼국유사(1281)’에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본초강목(1596)’에도 신라인들이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깊은 바다에서 김을 채취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한다. 한편 김의 최초 양식은 1650년경 전남 광양의 김여익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태인도에서 소나무와 밤나무 가지를 활용하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김이 이처럼 일찍부터 존재한 가운데 우리에게는 고유의 쌈 문화가 있으니, 김을 밥에 싸먹는 문화가 자연스레 존재했을 거라 추론하는 것이다.

 

그런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복쌈이다. 말 그래도 복을 싸서 먹는다라는 의미의 복쌈은 정월대보름에 복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먹는 별식이었다. ‘열양세시기(1819)’동국세시기(1849)’에 의하면 배춧잎에 김과 밥을 싸먹는 음식이 복과’, ‘박점’, ‘복쌈이라는 음식으로 존재했다. 김에 싼 복쌈을 많이 먹으면 볏섬을 많이 한다고 해서 아침을 먹고 나와 친구들에게 나는 볏섬을 많이 먹었으니 올해 농사는 내가 최고가 된다라고 자랑을 했다고도 한다. 이때 밥을 싸먹는 김은 손으로 대강 잘라 먹었는데, 칼이나 가위로 자르면 벼 목을 잘라 농사를 망친다고 해서 경계했기 때문이다. 전라도 고창에서는 노적쌓기라 해서 오곡밥을 지어 성주 앞이나 장독대에 오곡밥을 김에 싸서 갖다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노적쌈을 많이 쌓아야 그해 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다.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는 반면, 일본에서 김을 먹은 시점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늦다. 오후사쯔요이 박사의 바다 채소라는 책에 따르면 일본은 18세기 초중반부터 김을 먹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김을 훨씬 더 일찍 먹기 시작했으므로 김밥 또한 우리가 앞서서 먹기 시작했다는 게 한국 기원설의 핵심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초기 김밥이 조선 시대 쯤에 일본으로 전해졌고, 일제 시대에 새로운 형태로 우리나라에 역수입 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마지막으로 김밥이 우리 고유의 음식이라는 근거로 충무김밥이 있다. 무엇보다 초밥처럼 밥에 간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형 김밥의 유래 혹은 중요한 갈래라 주장하는 것이다. 충무김밥의 유래에는 몇 가지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핵심은 같다. 쉬는 것을 막기 위해 김밥과 반찬이 분리된다는 점이고, 그 주체만 조금씩 다르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에는 어부 남편과 아내가 등장한다. 남편이 바다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갈 때 끼니로 싸주었던 김밥이 밥과 찬으로 자연스레 분리되어 오늘의 형태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다른 이야기에서는 통영의 여객선 터미널을 중심으로 왕래하는 이들을 위한 행상들이 개발한 음식이라 소개한다. 이렇게 탄생한 충무김밥은 통영의 뚱보할매에 의해 국풍80’에 출전하게 되면서 통영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참고 문헌

- 지역N문화 : 일제강점기 초밥으로 만든 김밥

- 별미 밥과 별미 죽(삼성 가정요리, 삼성출판사)

- 전북일보 : [생활 속 역사 이야기] 14. 김밥의 유래

- 문화재청 : 역사와 추억이 뒤섞인 한국인의 소울푸드-김밥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밥

 

 

 

 

 

 

 

 

 

 

 

 

驚蟄이 지나 봄기운 도는..... 원주 명륜동 야산 용화산

 

 

 

 

 

07:57  원주 명륜동의 야산 용화산으로.........

 

 

 

더샵 3차........

 

 

용화산 남릉 오름길.......

 

 

 

 

08:05  해발 260m의 용화산 정상에.......

 

 

 

 

 

경칩을 지나며 봄기운이 도는 용롸산 능선길.......

 

 

 

 

 

 

치악산 비로봉 조망.......

 

 

 

용화산 둘레길.......  풍경길

 

 

더샵 4차.......

 

 

 

 

 

중앙공원 1교에서 본...... 배부른산 - 감박산 - 봉화산

 

 

한지공원길.......

 

 

 

 

 

 

중앙공원으로 하산........

 

 

 

 

08:30  중앙공원 - 원주문화원.......

 

 

 

 

더샵 1차........

 

 

한솔.......

 

 

 

명륜어린이공원

 

 

단구 1차........

 

 

 

08:42  삼성으로.......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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