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150724 추신수일기... 3루로 몸을 날렸던 순간의 그 절박함이란

담바우1990 2015. 7. 24. 04:45

 

 

추신수 MLB일기...“3루로 몸을 날렸던 순간의 그 절박함이란

 

 

오늘(823, 한국시간) 콜로라도 덴버의 쿠어스필드에서 치른 로키스와의 3차전에서 7번타자 우익수로 출전해 5타수 1안타를 치고 1타점을 올렸습니다. 전날 기록한 사이클링 히트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성적이었고, 4개의 삼진이 실망을 안겨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제 자신은 삼진 4개가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팀이 10-8로 이겼고, 풀카운트까지 가면서 공을 충분히 보고 상대했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삼진 4개 중에서, 2개는 볼넷을 줘도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요. 물론 삼진 개수가 많은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경기에서 이겼고, 연속 선발 출전하면서 조금씩 타격감을 찾고 있는 듯 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올스타 휴식기 동안 가족들과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이 셋을 둔 가장이 여행 동안 온전히 쉴 수는 없었겠지만 몸은 힘들어도 가족들과 낚시도 하고 아내와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야구를 잊는 시간을 가졌다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4일을 쉬고 몸과 마음을 정리해서 휴스턴 원정을 떠났습니다. 뭔가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듯한 느낌이었고, 후반기에는 그동안 부족하고 모자랐던 부분을 제대로 만회하고 싶은 욕심과 의욕도 넘쳤습니다.

 

그러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1차전 라인업을 보니 제 이름이 없었습니다. 1번부터 9번까지 찬찬히 살펴봤지만 제 이름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절 라인업에서 뺄 때 배니스터 감독은 사전에 미리 귀띔을 해주시거나 절 따로 불러 라인업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베테랑 선수에 대한 예우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 그런 설명도 없었고, 후반기 첫 경기부터 제외된 부분은 저로서도 다소 심각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현실을 인정하기 전에 속상했습니다. 감독으로선 이기는 경기를 하기 위해 저조한 성적을 보이는 저보다 어린 선수들을 투입해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가고자 했을 겁니다. 이성적으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적으론 쉽게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2차전에선 8번타자 선발로, 3차전에선 또 다시 라인업에서 배제되었고,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1차전에선 라이언 루아의 대타로 나갔다가 삼진 당한 후 수비에서 교체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전 야구랑 싸우는 게 아니었습니다. 주위 환경과 그리고 제 자신과 싸우는 상황이 됩니다.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잡념이 들끓지만 그걸 내색할 수 없습니다. 현지 기자들은 제게 와서 은근히 감독과의 싸움을 부추기는 질문을 하지만, 전 매번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이 모든 원인은 저한테 있다고요. 그게 진심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고, 감독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좌투수의 선발 출전 여부에 따라 제 자리가 오락가락 하게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미국에 처음 와서 루키리그부터 단계를 밟아 올라가며 겪었던 그 참담하고 어려웠던 시간들에 비하면 지금의 상황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전의 고통스런 시간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죠. 제 인생 자체가 그렇게 해피하게만 굴러가지 않았고, 매번 우여곡절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그런 반복적인 일상을 통해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전 지금 충분히 괜찮습니다. 잘 견디고 있고요.

 

클리블랜드 시절, 매일 매일 경기에 출전하는 게 소원일 때가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후 성적이 좋지 않으면 바로 라인업에서 빠졌던 터라 당시의 목표는 돈이 아닌 매 경기 출전이었습니다. 그 후 성적을 내고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풀타임 출전은 당연시됐습니다. 또한 FA가 돼 거액의 돈을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에 왔을 때는 몸값이 높은 선수이기 때문에 당연히 매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배니스터 감독을 통해 전 10년 전, 8년 전의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겉으로는 야구에 대한 간절함을 외치고 있었지만, 마음은 풀타임 출전이 자연스러운 제 일상을 유지하고만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 그걸 감독이 깨우쳐줬습니다. 아무리 고액 연봉자라고 해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풀타임 출전이 희망사항일 수 있다는 사실을요. 물론 그 부분이 우리 팀에선 저한테만 해당되는 사항이지만요.

 

좌투수에 대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점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타난 성적은 받아들이지만, 제가 정말로 좌투수에 대해 그렇게 형편없는 선수였나? 하는 점에 대해선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좌투수가 나올 때마다 빼버리면 어느 순간부터 좌투수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선수가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전 그 정도로 추락한 선수가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822,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2차전에서 나온 사이클링히트는 제게 가슴 벅찬 의미를 안겨줬습니다. 7번타자로 나선 2회 초 첫 타석부터 1타점 2루타를 쳤고, 4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상황에서는 상대 선발 카일 켄트릭의 몸쪽 빠른 볼에 힘껏 방망이를 휘두른 것이 시즌 12호 홈런으로 이어졌습니다. 5회 초에는 좌완투수 요한 프란데를 상대로 1타점 적시타를 때려냈었죠. 네 번째 타석에선 내야땅볼로 물러났고, 그리고 9회 초. 마지막일 수 있는 타석에 들어서며 저도 당연히 사이클을 떠올렸습니다. 상대 투수가 좌완 렉스 브라더스였습니다. 투수는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길 원하지 않을 테고, 타자는 어떻게 해서든 기록을 내고 싶어 하는 팽팽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죠.

 

야구를 하다 보면 욕심을 낸다고 해서 대기록이 달성되지 않는다는 걸 제 경우나 다른 선수의 사례를 통해 자주 접했습니다. 투수들이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을 노리고 들어가면 9회에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 그런 기록은 선수의 능력이 아닌 하늘이 주는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타석에 들어섰을 때는 뭔가를 노리지 말고, 최대한 평상시처럼 타격감을 유지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데 방망이를 휘두르는 순간 굉장히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워낙 잘 맞아서 타구를 쳐다보지도 않고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이 중견수 키를 넘어 가운데 담장을 맞추는 바람에 홈런도, 2루타도 아닌 3루타로 이어졌습니다. 2루 베이스를 밟고 3루로 향하는데 설령 여기서 죽더라도 저 3루 베이스를 밟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래서 3루를 향해 몸을 날렸던 것이고요. 사이클링히트가 달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득점까지 올리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데 모든 선수들이 진심으로 축하를 전했습니다. 배니스터 감독도 물론이고요. 경기 후 구단관계자가 사이클링히트에 기념이 될 만한 당시의 공, 글러브, 방망이까지 모두 챙겨줬습니다. 유니폼까지도요.

 

원정 숙소로 돌아와 아내와 통화를 하는데 아내가 말도 못하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자존심 강한 제가 표현 못하고 참아가며 이뤄낸 기록이라고 기뻐해주면서도 아내도 많이 힘들었던지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아내를 달래줬습니다. 지금 내가 겪는 일은 지나가는 일 중의 하나일 뿐이고, 지금 감독한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미국에서 쌓은 15년 동안의 야구 인생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그리고 설령 누군가가 그걸 흔들려고 해도 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요.

 

제가 쌓은 건 모래성이 아닌 벽돌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렇습니다. 매일 경기에 나가고 싶으면 좋은 성적을 내면 됩니다. 그게 정답입니다. 누구 탓 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야구는 감독이 아닌 선수가 하는 것입니다. 그건 제 생각이 아닌 이전 감독들이 제게 말씀해주신 부분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믿고 미국에서 야구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150724 (금)  늦장마..... 비내리는 개군 교정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THE  END   *****